바람피는 남편과 단칼에 이혼하기 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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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화 [바람피기 좋은 날]
 
그녀 : 왜 이혼을 했냐구요? 남편이 바람을 피웠어요.

나 : 한 번이요? 딱 한 번인데 이혼했다구요?

그녀 : 그럼 두 번 피울 때 까지 기다리나요?

나 : ....

바람? 절대 용서 못 하지.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야. 난 절대 못 살아.
~ 라고 말하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. 아마 20대 초반까지였을 거다.

한 두 차례의 연애와 이별을 거치면서 한때는 일종의 자유연애자(?) 행세를 한 적도 있다. 결혼을 전제로 사귀던 한 남자가 다른 여자와 잠을 잤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. 불 같이 치솟아 오르는 분노와, '그럴 수도 있지'하는 인간적인 동질감...

그 사람이 내 것도 아닌데 뭐...라고 중얼거리며 나는 결국 분노를 덮고, 그를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택했다. 그리고, 나도 다른 남자를 만났다. 한 사람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구속에서 벗어나니 그도 자유로웠고, 나도 자유로웠다. 하지만 뭔가 빈 것 같은 허전함에 우린 결국 친구로 남게 됐다.

지금 내 남편은, 예전 남자친구와 뭔가 빈 것 같은 허전함을 느끼던 시절의 정점에 만났다. 그 당시 내 남편도 한 여자를 오랫동안 사랑하는 중이었다. 비록 짝사랑이었지만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고지순해보였다. 하지만, 그 와중에도 나와 섹스는 했다.

그가 결국 나와 결혼했기 때문에, 그 당시 불륜에 해당했던 우리의 연애는 정정당당한 추억이 될 수 있다. 결혼은 그런 것이다. 어쩌면 무의미 할 수 도 있는 약속을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관계.

부부가 결혼해 50년을 해로한다고 가정했을 때 50년간 단 한 사람만 바라보며 살 수 있는 확률과 한두 번쯤 한 눈 팔 수 있는 확률 중 어느 것이 더 우세할가? 따지고 보면 1부 1처제는 인류에게 주어진 가혹한 형벌이다. 이 어려운 제도를 굳이 택해 살면서 상처받고 상처주는 이유가 뭔지... 나는 가끔 궁금해진다.

결혼한지 5년이 되가는 우리 부부가 서로에 대한 신의를 제대로 지켜왔는지의 여부는.... 사실 모르는 일이다. 내 남편이 바람을 폈다면? 내가 남편 몰래 다른 남자를 사랑했다면... 우리는 이성적으로!!!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? 애 때문에 살아야지... 그런 거 말고, 진심으로 서로를 용서하고 기다려줄 수 있을까?

그럴 수 있을 것 같다.
...아니 그랬다.

하지만, 머리가 아닌 마음의 상처는 꽤 오랫동안 우리 부부를 괴롭힐 것이다.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보고 싶어 했다는 사실,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키스하는 상상, 나 보다 그 년이/ 그 놈이 더 섹스를 잘 할까? 하는 조바심....등등 복잡한 심경이 범벅이 되어 가슴을 뛰게하고 눈물이 흐르게 할 것 이다.

내가 존경하는 한 여성은 단 칼에 무 자르듯 이혼을 택했다. 자신을 속인 남자랑 더 이상 살 수 없었다고 한다. '정말 이혼한 이유는 따로 있는 거죠? 이해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, 상처가 너무 커서 이해할 여력이 없었던 거죠?'라고 토를 달려다가 꾹 참았다. 머리보다 가슴으로 살고자 하는 그녀의 열정과 단호함이 순간 부러워졌기 때문이다.

언젠가 남편이 '이해한다는 것은 나도 그러고 싶다는 마음의 또 다른 표현'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. 맞다. 나도 바람 필 수 있는 사람이니까, 남편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.

하지만, 오늘은 웬지.... '절대 용서 못 해!'라고 말하던 나의 20대가 그립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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